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 신비

by dsfssdf 2022. 10. 20.
반응형



일곱 번째 장이 끝났다. 서양의 사상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철학과 기독교를 근본 뿌리로 한다. 이 두 사상은 일반적으로 대립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본질에서는 이원론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2천년의 역사 동안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어올 수 있었다. 이번 장에서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해보았다.

첫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추상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열정적인 사도였던 바울의 사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절대자와 관계 맺기 위한 필연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바울의 역할이 400년 전 플라톤의 역할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사유 속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단지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진리와 관계 맺은 자가 처하게 되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바울의 추상화와 일반화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졌다. 장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지위가 구체적 개인에서 초월적 보편으로 격상되었다는 점이다. 로마 제국의 작은 식민지 유대 지역에서 활동한 예수는 바울을 통해 지역적 한계를 넘어 인류 보편의 존재로 확장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반면 단점은 그러한 해석으로 현실에 발 딛고 살아 숨 쉬는 가르침을 설파했던 예수의 혁명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가려졌다는 점이다.

교회는 바울의 사상을 토대로 성장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신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보편자가 되었다. 반대로 인간은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신과 인간은 분리되었고, 천국과 지상도 분리되었으며, 영혼과 신체, 선과 악, 금욕과 쾌락도 마찬가지로 분리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교리는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플라톤의 이원론과 만나며 체계화되고 세련되어졌다. 이원론의 세계관 안에서 종교와 철학은 접점을 찾았다.

이원론은 오랜 시간 서양을 지배했다. 특히 서양 철학이 근대에 이르러 일원론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것과는 달리 기독교는 이원론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신의 완전무결함은 불완전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절대적으로 보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일원론적 측면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

우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기독교 신비주의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로써 일원론의 사유가 특정 지역과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의 모든 지역과 시대를 포괄하는 보편적 사유 방식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자아베다아트만도가덕불교의식철학 초월적 자아기독교 영혼의 불꽃현상 마야 혼란연기 현상지상세계관계 실체 브라흐만 범아일여 도덕일치 | 일체유심조관념론 내면의 신도공물자체신성

이제 우리는 결론의 문 앞에 섰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