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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by dsfssdf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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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는 당시 무신론적 철학자들이 말하던 세계관이었다. 에크하르트는 교황에게 항소했다. 하지만 노쇠한 그는 최후의 판결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고요히 영면에 들었다.

그가 죽고 2년이 지났을 때, 교황 요한 22세는 그의 글과 강의에서 발췌한 28개 명제를 평가해서 일부는 이단이고 일부는 위험하다고 판결했다. 사실 교회가 이런 판결을 내렸던 것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가 교회의 역할을 축소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했다. 중간에 교회의 권위를 매개하지 않고 신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는 사상을 교회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의 저작물은 배포 금지되었고, 공개적 논의도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그의 저작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요하네스타울러, 하인리히 소이제, 헨리코 수소 등의 뛰어난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교회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자기 안에서 신을 만나고자 하는 많은 신앙인에 의해 활발히 연구되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결과적으로 유럽의 철학과 기독교 사상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에크하르트의 사상

에크하르트는 신과 자아의 일체성을 인식하고자 했다. 이것이 그의 신비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에게 신이란 기독교의 삼위격을
초월한 근원적 신성(神性)으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근원적 신성은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규정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무한(無限인 동시에 무(無)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언어로 묘사하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신 자체와 멀어지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에크하르트는 신은 이것이라고도 저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설명이 《베다》나 도교 혹은 불교에서의 설명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베다》는 궁극적 존재로서의 브라흐만을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까닭에 'neti neti', 즉 '아니다. 아니다'로 부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도덕경〉 첫 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는 '도를 도라고 하더라도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다시 말해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를 말하며 궁극적인 존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나 칸트의 물자체에 대해 말할 수 없음과도 연결된다고 하겠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 궁극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모든 이는 어쩔 수 없이 인간 사유의 유일한 도구인 언어의 한계에 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신의 본질과 합일되기 위해서는 신의 개념도 떨쳐내야 한다.”

다음으로 에크하르트는 자아에 대해 설명하고, 동시에 자아 안에서의 신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영혼 혹은 마음의 깊은 곳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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